2003년, 2005년, 2014년


수준이 맞다는 것. 나고 자란 곳이나 학력, 나이와는 상관 없이 진짜 친구가 되는 결정적 조건이다. 대화와 토론의 코드가 통하는 멤버를 찾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 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내게도 몇 명의 친구들이 있다. 그 중 하나였던 흰꽃님이 추천해준 영화가 바로 몽상가들이다. 작년부터 제발 이 영화 보고 자기랑 얘기하자 했었는데 게으름뱅이는 미루다 미루다 오늘(14일)에서야 봤다. 궁금한 건 못 참는 내가 단 하나의 스포일러도 접하지 않았던 것은, 내 감상에 대한 근자감이라기보다는 혹자가 내세운 프레임에 갇힌 채 작품을 해석할까 두려워서였다. 물론 내 수준으로는 해석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몽상가들은 영화, 음악, 책, 혁명, 자유, 꿈 등 당대의 청춘이 내포할 수 있는 모든 키워드를 담은 작품이다. 68혁명 당시를 그리는 만큼, 자유를 꿈꾸는 거리의 청년들은 파시즘의 전유물과도 같던 정부에 저항하며 경찰과 싸운다. 주요 인물들, 그러니까 영화광 아메리칸 매튜, 파리지앵 쌍둥이 이사벨과 테오의 이야기는 이러한 배경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영화는 초점화자인 매튜를 따라 쌍둥이 남매의 세계에 관객을 초대한다. 초반부 이해할 수 없던 그들의 세계는, 정말 매튜가 그랬던 것처럼, 말미에 내게도 녹아든 듯 편안하고 자유로와졌다. 그러나 실은, '이해할 수 없'었을 때까지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을 만큼 재미가 없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단번에 깨주었던 장면이 바로 위, 루브르 박물관을 가로질러 뛰는 장면이다.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볼만 한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다름이 아니라 기존의 필름과 그것을 재연하는 장면들이 교차되게 연출한 기법 말이다. 위 장면은 고다르의 국외자들에 나오는 한 씬을 오마주하며, 9분 45초의 기록을 깨보자던 그들의 도전. 결과적으로 9분 38초, 성공한다. 이후 쌍둥이네 집에서 육체적 관계를 가지는 데에 치중하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며 설전만 펼칠 뿐 세상에 나오지는 않는 장면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그들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내가 제대로 이입했던 것 같다.



분명 쌍둥이랬고 부모님도 같았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근친인 걸까. 같이 목욕을 하고 나체로 잠을 자고, 보통 사람들이 남매 사이를 짐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근친이라 정의내리기 전에 부가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도 어느 정도는 그런 관계를 경계하고 있으며, 육체적 관계까지는 가지 않는 선에서 서로를 욕망한다. 영화 맞히기 게임을 하며 맞히지 못할 경우 벌칙을 내리는 것으로 욕망을 해소하는데, 이사벨은 테오에게 우리(이사벨과 매튜) 앞에서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위를 하라며 시키고, 테오는 이사벨과 매튜에게 제 앞에서 관계를 맺으라 시킨다. 매튜를 매개로, 지나치리만큼 순수한 둘은 감히 넘지 못했던 영역을 밟아보고, 이러한 관계에 있어서는 또다른 몽상을 꿈꾼 셈. 물론 매튜가 이들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 고조에 다다를 때, 그들에게 일침을 놓기도 하니까. 쌍둥이는 유아기의 호기심이 아직까지도 발현되고 있으며, 매튜가 이들의 관계를 처음 목격한 위 장면처럼 태아처럼 웅크려 잔다. 필자의 경우 이들이 '태아처럼 웅크려 잔다'라고는 사고가 발전하지 못했다.



그것은 몽상가들이 어렵다고 느껴진 이유 중 하나였는데, 예를 하나 들자면 다음과 같다. 케빈에 대하여에서 케빈이 다 크고도 어릴 때의 옷을 고집해 배가 다 드러나는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유아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설명을 조금 더 쉽게 접근하게끔 보여준 것.



아무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선의 금을 밟아버리는 이사벨과 테오 만큼은 아니더라도, 주인공 매튜 또한 쌍둥이가 인정할 만큼 존나 이상한 놈이다. 그들에 잘 녹아들어 셋이 한 세트가 된 것이 어쩌면 순리이고 운명인 것처럼. 그러나 매튜가 쌍둥이들과 잘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쨌거나 그는 이방인'인 걸 중간중간 각인시켜주는 듯한 순간들이 나온다. 이질감이 느껴지게끔 카메라 기법도 쓰인다. 그 효과들의 끝이 마지막 장면이다. 몽상가들이 내내 대치해왔던 가치관에 대해, 드디어 행동으로 옮기는 것 말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은 같으면서도, 거기에 대치해서 행동으로 보여줘야 그들도 알 거라는 테오와, '그들과' 같은 방식은 똑같은 파시즘에 지나지 않는다는 매튜의 가치관 차이는 그들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겠지만, 적어도 지켜보는 내게는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사유였다.



세 인물이 언뜻 월플라워의 세 인물들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몽상가들이 다룬 관계보다 더 단순하다. 그 결코 명료할 수는 없지만, 동성애 코드를 다루는 만큼 월플라워가 고민하는 부분은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몽상가들의 불타는 청춘이 앞질러나갔던 혁명과는 달리 조금 더 현대적이라 더 가까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에즈라 밀러 영화 두 편이 더 소개됐는데 내가 에지 좋아해서 그런 거 맞음.




현역 고삼 시절 영화과를 준비할 때 조금만 더 깊이 있게 공부했더라면 좋았을 걸. 몽상가들의 위 장면의 거울 속 분열된 그들을 보라. 감독의 수많은 미장센들 가운데 캐치해내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공부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고 그냥 스쳐봤던! 용어들이 죄다 이 영화에 나온다. 영화 속 영화를 바란 듯 감독이 낼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낸 작품이라 감히 단언해본다. 영화에 언급된 영화인들을 위한 헌정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독이 제 몸 불살라 연출, 색감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감탄을 금할 수 없겠다. 무려 15년도 더 된 작품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 꿈꾸는 자들이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끝없이 토론했던 것처럼,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끝없는 토론이 가능하다. 이들의 몽상 편린들이 모여 또다른 몽상을 만들어냈듯, 영화의 어떤 비늘을 벗겨내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업로딩하는 오늘(15일) 흰꽃님 생일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