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2018.07.27 23:56

퇴원을 했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돌변하는 우리 엄마. 기독교인이라서 풍수지리 어쩌구는 안 믿어야 하지만 진짜 우리집이 터가 안 좋은 건가 깊게 고민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고? 나는 괴로워서 집을 나왔고 역시 내 상한 기분을 풀어주는 상대는 또 비얌님이다. 밥이랑 빙수도 사준다고 꼬셔주셔서 나는 눈누난나 노트북 들고 나갔다! 오늘 날씨 '뇌우'라고 돼있었는데 개뿔 걍 햇볕은 쨍쨍 아스팔트는 반짝.


안 그래도 위장 약한데 자극적인 거 먹으면 바깥에서 고생할까봐, 엽떡을 먹긴 먹되 녹여 먹듯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때 비얌님이 이런 얘길 했다.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아무 생각 없었던 것 같애. 지금은 겨우 유지시키고 있는 인간관계만으로도 너무 벅차지 않니. 


고딩 때의 고민은 지금에 비하면 고민 취급도 해주고 싶지 않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그때의 고민이라 해봐야 친구와의 감정소모, 모의고사 성적, 다가올 수능 걱정, 뭐 그런 것들. 지금은 당장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우울증과 행복을 반복해서 고민하는 것은 살아내기 위한 발악이다. 20대가 이렇게 지루하고 아픈 줄 알았으면 빨리 와달라고 바라지도 않았을 거다. 술담배 하지도 않는데 10대가 뭐가 아쉽다고.


하지만 그나마 건질 게 있다면 전보다는 관계 구축에 있어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는 거다. 아주 조금이라 티는 안 나지만 본인은 안다. 아주 살갑게 스킨쉽할 줄은 몰라도 자연스럽게 말을 붙일 줄은 안다. 입 꾹 다물고 듣기만 하는 거나 내 할 말만 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는 것도 안다. 깊게 들어주고 공감을 하고 그 화제에서 가지를 뻗쳐나갈 줄도 안다. 감정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관계라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결정한 순간부터 삶을 마다할 때까지 끝없이 붙어있을 게다. 언제 만나든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봐왔대도 불편한 사람이 있고, 불편해도 사회 생활을 위해 꾸준히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락하자마자 후회부터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야길 하다 요즘 들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좇느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놓친 적이 있어요.


나는 좋아하면 퍽 엎어진다. 똑똑하고(=똑똑하게 굴고) 말 잘하고 웃긴 사람을 좋아한다. 일종의 동경이다. 뭐든 잘하는 사람이 좋다. 아이돌로 따지면 '치고 빠지기'다. 과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는데 할 거 하고 빠져주는 거. 선을 지키는 거. 유연하게 대처하고 프로다운 거. 물론 직업이니만큼 '무대장인'은 기본 중의 기본. 음,, 샛길로 빠졌는데,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거나 귀찮아해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준다. 상처를 받아도 조금만 잘해주면 그새 사르르 녹아버린다. 그러느라 놓친 사람들이 분명 있었단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게 그랬듯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나는 그 차가운 뒤를 보고 후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저들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거? 무엇보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등돌려본 적이 없다. 내 스스로 갑을을 상정하고 을을 자처해왔으니. 내 글에는 내가 묻어난다. 불완전연애에서 열심히 말하고자 하던 건 그거였다.


비얌님은 연애 이야기를 했다. '관심'과 '좋아함'의 차이. 관심이 깊어지면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약간 결이 다르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우선 좋아함의 베이스는 분명 관심이다. 하지만 관심은 정말 누군가에게 눈길이 가고 소식이 궁금함에서 그친다. 그와 연애하는 것까지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냥 그 뿐이다. 좋아함은 그의 소식에 신경이 쓰이고 닿인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그가 이미 내 심장 가까이에 와버렸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깊게 내 마음을 상하게 한다.


대학 다닐 때(지금 학교 말고) 관심 가는 선배가 있었다. 아이돌 누구를 닮아서 눈길이 갔는데 알고 보니 같은 과 선배였고 어쩌다보니 안면 트게 됐다. 근데 그 선배가 내 동기랑 사귄다고 했다. 그때 내 반응은 이랬다. "아 진짜로? 근데 그럴 것 같긴 하더라, 좋아하는 거 너무 알겠어서."


아주 최근에, 꿈에 h가 나왔다. 3년동안 좋아했던 애였고 첫사랑이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친구 대 친구로 만났어서 되게 즐겁게 놀다 헤어졌었는데, 꿈에만 나오면 나는 그애가 너무 미워서 눈물부터 난다. 나는 잔뜩 상처받은 표정으로 그애를 쳐다보는데, 그애는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다. 나는 그게 또 상처가 돼서 울먹거리다 꿈에서 깬다. 그리고 읊조리는 거지. 아 씨벌,,


나는 근 4년간 누구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무서워서다. 비얌님은 내가 이미 사랑을 하고 있고, 그 사랑하는 이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있어서 이미 연애의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늘상 연애하고 싶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것이 불필요해서 연애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1:불특정다수 말고 1:1 관계를 나도 가끔은 원하고 있다.


관계 참 어렵다. 원하지 않다가도 원하게 된다. 병원에 있는 동안 5키로가 빠졌다. 아픈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괴로웠다.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같은 공간 같은 냄새 또다시 반복하는 거 생각보다 힘들었다. 티를 낸 적이 없다. 나는 늘 위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최선을 다해도 미움받았던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처럼. 아무튼 우리 식구들 아프지 말고 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슬프다.


아, 금식 끝나서 요거트 스무디 먹으면서 작업했다. 손에 모터 달려서 빨리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