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유투브 돌아다니다 mbc 해피타임 명작극장 + 드라마당 클립 영상들을 접하게 됐다. 열심히 본방사수했던 드라마도 있었지만 봐야지 봐야지 벼루기만 하고 못 봤던 드라마가 수두룩했다. 진득하게 앉는 게 불가능해서 비얌님이 그렇게나 추천했던 수상한 파트너도 정주행에 실패했던 나다. 때문에 이 많은 작품들의 장면 하나하나를 담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편집된 영상들을 보기로 한다. 한 해 한 해씩은 변하는 게 없어보여도 그 한 해들이 쌓이면 세월을 움직인다. 나는 옛날 드라마의 참을 수 없는 빻음에 몸서리쳤고, 한국 드라마가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음에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제약 많던 공중파 드라마의 틀을 깨게 만들어준 케이블 드라마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 아무튼 아무튼. 킬미힐미는 비얌님이 대본집을 소장하고 있기까지 해서 "그렇게까지?"라고 되물었던 작품이다. 아직 엄두가 안 나 정주행 시도조차 못 하고 있는 이 작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하기만 했어서 이번에도 클립 영상으로만 보고 치우려던 내가, 영상을 중단하고 정주행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3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궁금증이 풀렸다는 말이다.



정신병은 '소재'가 되지 않으면 늘 손가락질 당하는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병'이었다. 지금처럼 그나마 보편적인 인식으로 뻗어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개콘 다중이처럼 개그 소재로 쓰이거나(사진만 봐도 ㅋ), 무슨무슨 증후군/신드롬 이름 자체가 제목이 되는 (대개는 인터넷)소설 소재로 쓰이거나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 증상이 신기하고 우습다는 이유만으로 사용된 예다. 어떻게 그 무서운 병이 생겼고, 치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나를 망가뜨린 원인을 찾아 내게 위로한다는 과정을 싹 다 무시해버렸다. 어떤 이야기에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 소재를 쓴 것이 아니라, 소재의 특이성만을 가져온 결과다. 사람들이 얼마나 무식했는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n차 가해를 낳았는지 여기서 특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킬미힐미는, 로코라는 장르 안에서 탄탄한 스토리와 뚜렷한 메세지, 유치하지 않은 대사, 개성있는 캐릭터,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 등 여러 마리 토끼를 거며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특히 다중인격을 다루면서 시청자들에게는 쉽게 다가오도록 유도하면서도, 그 결코 가벼운 병이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데만도 힘든 작업이었을 텐데 작가는 그걸 성공시켰다. 영화는 철저히 사건 중심이지만, 드라마는 캐릭터 싸움이다.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의 납득할 수 있는 입장이랄 것이 있어야 한다.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관계에 있어 발생되는 갈등과 대립이 당위성을 가져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가치관,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그 갈등을 해결하고 말고로 드라마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개입되는 것이 어떠한 사건일 뿐이다. 작가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 물론 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했다. 한참 뒤에 재방영을 해준대도 지성은 그 해 연기대상을 받아야한다. 매 인격마다 정말 다른 캐릭터가 된다. 하지만 그 일곱 명 모두 한 사람의 조각들이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자아를 연기해야 하는데 이건 진짜 연기 천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잘생기고 멍뭉이같고 '다정한' 남자주인공. 그 어떠한 의도도 숨기지 않은 다정이 바로 차도현의 강점이다. 유하고 착한 사람에게 가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배역. 그는 뒷덜미를 잡혀 끌려갔고, 조그마한 실수만으로 유일한 친구를 폭력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을 강제로 심겼다. 어른들의 싸움과 아버지의 폭력성이 낳은 괴물, 차도현이 아니라 그 마음 깊이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폭력이 폭력을 낳아 만들어져 차도현과 함께 성장한 인격 신세기, 어린 시절 보고 배웠던 아버지의 자유롭고 싶던 모습이 인격화된 40대 페리박, 고등학생 시절 자살 시도 후 만들어진 고등학생 인격 안요섭과 동시에 살고 싶다는 의지로 튀어나온 쌍둥이 인격 안요나, 오리진의 어린시절을 기억하며 만들어진 탓에 원래부터 존재했으나 오리진을 만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인격 나나, 그리고 차도현이던 오리진의 아빠 이야기를 들으며 그 스스로 상상해낸 인격 미스터X. 특히 차도현과 신세기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듯 서로를 혐오하고 동일시하기를 거부하지만 실상 같은 사람인 셈이다.



보는 내내 연기 거슬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 남들은 믿보황이니 로코여주의 정석이니 할 때 나혼자 구시렁구시렁했는데 남들은 이게 이상한 줄 모르는 건가? 코믹장면, 아련한장면 표정연기가 죄다 ctrl+c ctrl+v인 것도 모자라서 ㅈ을 z로 발음하고, ㅅ은 x로 발음하고, ㅗ는 ㅜ로 발음하고, 받침 ㄹ은 l로 발음함. 술취한 연기할 때는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예쁜 얼굴 좀 잘 살렸으면 좋겠다. 무조건 망가진다고 연기 잘 하는 거 아닌데. 오리진 빼고는 캐스팅 다 완벽했다고 생각함.



오리온은 정말이지 박서준 인생캐릭터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누가 봐도 현실남맨데 리진의 눈길이 닿지 않는 순간들로는 멜로눈깔 장착한다. 그 누구보다도 오리진을 사랑하고 걱정한다. 남매로든, 남자로서든, 오랜세월 키워온 마음이라 숨기는 데에도 도가 텄다. 이름 없는 작가로 활동하며 제 할 도리해서 부모 속 안 썩이고, 목표한 바 있으면 집요하게 찾아내고 탐구하기, 사람들과 굳이 적대적 관계 만들지 않고 잘 지내기, 척하면 척 센스 있게 바로 알아먹는 말귀에, 소중한 사람 위해서 보낼 줄 아는 참된 오빠남자. 요나랑 잘 어울려 괜찮아^^


아까 너도 인간이니? 잠깐 스쳐봤는데 서강준이랑 공승연 나오더라고. 캐스팅은 좋은데 감독인지 PD인지가 쳐돌아서 승연언니 실제로 맞게 했다던뎈ㅋㅋㅋ 그래서 그때부터 안 봤고, 오늘 보니까 김성령 죽는 씬 보고 기가 차서 비웃었다. 그거 보기 전에는 이시영이랑 지현우랑 지랄하는 드라마 보고 비웃었는데, 공중파에 남아있는 드라마가 이제는 그 수준이라니 존나 비웃김. 아무튼 공승연은 긴머리 소취. 승연언니 긴머리하고 오리진했으면 좋겠다. 시나리오 연기 연출 삼박자 완벽한 작품만 보고 싶다. 그래도 킬미힐미는 선방한 셈. 보길 잘했음. 뭔가 좀 진득하고 깊이있게 쓰고 싶었는데 잘 안 된다. 분석 말고 진짜 생각만 기록해야겠다. 힘드니까 하기 싫네. 아 결국 대본집 샀음.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