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2

2019. 1. 16. 00:58

핑계라면 핑곈데 스트레스 너무 받쳐서 원고 안 되니까 또 블로그 켰다. 나에게 가장 스트레스는 뭘까. 나태한 나, 발전 없는 나, 끊임없는 악순환에 어김없이 걸려든 나, 를 만든 스트레스는 작년과 다를 것 없이 이번에도 인간관계. 더는 도망칠 구석도, 여유도 없다. 나이가 찼다는 건 이래서 좋지 않다. 스무살에 인연을 끊고 도망쳤다. 후회했지만 어린 나는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다. 도망친 곳에서 도약을 못했다면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사회성 결여라는 낙인과 함께 모두에게서 도태돼버릴 것이 뻔하다. 그 정도로 모험심이 강하진 않다. 주목받고 싶고 뭐든 잘하고 싶지만, 그것이 곧 다이내믹한 인생을 바란다는 건 아니다. 여태껏 잔인했던 삶이다. 나는 좀 더 잔잔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지난 몇년간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돈'이다. 경제적 여유는 표면상 물질적 여유와 인간의 심적 여유를 동반한다. 불쌍한 우리 손녀, 불쌍한 우리 딸로 비춰진 세월동안 덕분에 어른들은 고생하셨지만 나는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공주처럼 살았다. 가난이 부끄럽지는 않았고 다만 미친듯이 벗어나고 싶기는 했다. 크면 클수록 늙어가는 아빠 엄마가 보였다. 돈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엄마가 보였다. 더는 날 업어줄 수 없는 구부정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냥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돈이면 될 것 같았다. 일하지 마세요. 무능력한 나를 위해 고생하지 마세요. 남들한테 떵떵거리면서 살아주세요. 그래서 나는 명예도 중시하기 시작했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오를 수 없는 나무 위에서 노닐며 침이나 탁 뱉어주고 싶었고, 울 식구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 성공을 꿈꿨던 나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채 이곳에 있다.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 있다. 대기만성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대기만성 밖에 없는 사람이 됐다. 음악이든 글이든, 뭐든 좋으니 전선에 뛰어들고 싶다. 이제 장학금도 받지 못할텐데 당장의 등록금과 기숙사비도 걱정이고 이 몸뚱이로 알바는 할 수 있을지, 사회생활은 할 수 있을지, 모든 게 다 걱정투성이다.


하고 싶은 건 많다. 그림도 잘 그리고 싶고, 영어도 잘하고 싶고, 책도 많이 읽고 싶고, 다이어트도 하고 싶고, 똑똑해서 어떤 주제가 나오든 대화에 잘 스며들고 싶다. 거기에 수반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늘 용두사미였고 나는 아직도 그 버릇을 놓지 못했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큰 죄라고 했다. 나는 평생을 죄짓고 살았다. 내 기도에는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멘트가 꼭 있다. 얼마나 우스운가.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의지의 문젠데, 의지가 없어서, 나의 노력을 신께 바라고 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제일 말랐을 시절이 벌써 8년 전이다. 저체중이었고 타고난 몸매가 예뻐서 당시의 나를 사랑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하고 비만이 되고서도 나는 그 시절을 언제까지고 추억하며 몇 없는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다. 며칠 전 속옷 사러 갔다가 모 브랜드 풀슬립 화보를 봤다. 노숙해보이긴 해도 너무 예쁘긴 한데 감히 내가 시선을 못 둘 정도로 모델은 말랐고 핏이 살았다. 엄마가 "뭐 살래? 이건 얼마고 이건 얼마래." 하는데 그 가격에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기도 했고, 나는 그 속옷들을 살 생각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예쁘게 입을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그 자릴 벗어났다. "엄마가 돈이 없어서 미안해." 그런 말을 하는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런 게 아닌데 아니라고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내가 그때부터만 유지했어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이 들수록 빼기도 힘들고 쉽게 지친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빼라는데 어디 쉽냐고. 피티 등록했다는 동기 말 들으면 아, 우리집은 돈이 없으니까. 또 핑계를 대버린다. 다이어트 뿐이 아니다. 영어든 기타 외국어든 학원 다닐 돈이 없고, 작사 학원에 다닐 돈은 더더욱 없다. 돈이 있었으면 그래 다 해볼 순 있었겠지만, 비단 돈 문제만은 아닌데 말이다.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실은 내게 가장 가까이서 쉽고 깊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다. 죽고 싶다. 그런 생각을 시작한 게 열다섯이다. 착하고 얌전했던 나는 학교 폭력을 겪은 후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열둘에 선생에게 핍박을 받았을 때는 집에 와서 우는 게 다였지만, 열다섯에는 정말 죽는 방법을 모색했다. 바깥에서는 바뀌는 게 없었고 내 괴팍해진 성격은 집에서 드러났다. 나도 힘들었고 식구들도 힘들었다. 관계가 이상해졌다. 열일곱부터 친구라는 게 생기니까 나는 공부가 필요 없었고 자식에게 스스로를 놓지 말길 바랐던 엄마와의 불화가 심해졌다. 가수 하나만 바라봤고 우리 식구들은 그것이 철없는 어린 아이의 말장난인 줄만 알았다. 응원이 쉬웠던 게 그 때문인 걸 나는 몰랐다. 원망이라도 할 때면 "지금 성공한 애들 봐라. 거기는 부모가 다 뒷받침해줬던 거 같나. 야는 안 해본 알바가 없단다. 다 그러면서 죽기살기로 하니까 성공하는 기다." 틀린 소리 하나도 없다. 나는 부딪치기가 두려우니까. 나는 아직도 세상이 무서우니까. 나약하니까.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 됐다. 술래를 들으면서 '내게 무뚝뚝하게 굴지 마요, 견딜 수가 없어요' 가사가 나오면 내가 상처를 받아 눈물지었고, 피터팬을 들으면서 나의 6년 세월간 고통을 감내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눈물지었다. 나를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내가 슬프게 했으니까 뭐라 할 수 없지.. 미안해.


행복하길 바라는 것과는 별개로.. 정말 이상한 곳에서 핀트가 나가 나에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는 엄마.. 를 보며 나는 또 관계를 생각한다. 모녀관계는 정말 뭘까.. 가까이 할수록 힘든 것 같은데 멀면 더 힘든. 방학이랍시고 내려왔더니 다시 탈모가 왔다. 이 끝없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엄마는 나 때문에 더 불쌍한 사람이다. 나한테 아무리 압박을 가해도 평생을 힘들게 사셨고 지금 당장 내가 바꿔줄 수 있는 형편도 못 된다.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자유를 꿈꾸면서도 막상 조여오는 플랜이 없으니 불안하고. 막막함을 뒤로한 채 헤벌레 놀기만 하다보면 내 끝이 없을 거고.


HOW'S IT GOING TO END?

어떻게 끝날까? 내 인생 말이야.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까?


이 모든 걸 기도해야 함을 안다. 행복의 기준을 세속의 것으로 잡은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함도 안다. 죽음 그 너머를 봐야하는 걸 알지만 나는 당장의 만족에 고픈 죄인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게 무섭다. 여태의 죄를 내 입으로 고백하는 게 무섭고, 기도를 시작하는 것 자체도 무섭고, 기도한 다음날도 하면 좋으련만 늘 그렇지 않았어서 그것도 무섭다. 아기 때의 나는 무슨 마음으로 기도를 했을까. 작은 통증에도 기도할 줄 알았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기도했을 때는 2016년, 엄마가 아파서 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을 때. 물론 나는 그 후로 두 해간 우울증 때문에 죽을 것 같았지만 결국 그 기도와 많은 분들의 기도가 나와 우리 가족을 살렸다. 그리고 나의 괴로운 몸부림에서 비롯된 기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제도 도움을 받았다. 감사할 게 많은데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럴까. 왜 왜 이럴까 하고 질문만 던지고 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과 친하지만 깊은 관계를 나누는 건 한둘이다. 얕은 관계는 정말 필요할 때 연락을 취할 수 없고 깊은 관계는 쉽고 깊숙이 상처를 줄 수 있다. 너무 어렵다. 그렇다고 혼자는 버틸 수 없는 세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의 요건을 갖춘 키워드는 '자존감'이었는데, 요즘은 '인간 관계'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흥하는 이유도 인물간의 얽히고 설킨 관계가, 화는 나지만 현실에 충분히 있을 법하고 캐릭터가 각자의 설득되는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시간과 돈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진저리쳐진다. 약속을 당일 파토내는 건 기본이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고, 본인은 사과하지 않으면서 내게는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 무례하고 무례하고 무례하다. 그러나 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 그들보다 더 앞선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어떡하지.. 나는 어떻게 살면 좋지..


내 고민이 발전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지만, 곧 우울해질 것 같다..